도겸의 병이 하루하루 깊어지는가 싶더니 마침내 병상에 누워버렸다. 며칠을 앓던 그는 측근인 미축과 진등 등을 불러 하소연했다.
"나는 이제 며칠 못 살 것 같네. 내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앞날이 걱정되어 죽더라도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을 것 같네."
미축은 도겸의 이마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것을 보고 암울한 기분이 들어 연신 한숨을 쉬었다. 진등 또한 마찬가지 심정이었는지 미축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공께서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소이다."
미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의 사방이 위험에 처해있어 하루라도 주인이 없으면 안 됩니다. 다행히 소패에 유현덕 공이 계시니 부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진등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유공을 청해서 서주를 맡아 달라 부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겸은 탄식하며 말했다.
"내 뜻이 본래 그러하다네. 하지만 유공이 한사코 마다하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미축은 진지하게 말했다.
"주공의 병환이 이토록 위중하신 것을 보면 유공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ㆍㆍㆍ 그럼 어서 불러주게."
소패에 있던 유비는 전갈을 받고 달려와 도겸을 만났다. 그는 도겸의 병색이 뚜렷한 것을 보고 안타까운 듯 말했다.
"소생은 자나 깨나 도대공의 건강을 걱정했습니다. 어서 쾌차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예전처럼 서주무림을 다스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겸은 앙상한 손을 뻗어 유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난 이미 틀렸소이다. 내 유공을 부른 것은 서주를 맡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라오."
유비는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
"머잖아 쾌차하실 텐데 어찌 그런 약한 말씀을 하십니까? 더구나 대공께서는 자제가 둘이나 있는데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겸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비가 어찌 아들을 모르겠소? 두 놈은 모두 재목이 못 되니 결코 서주를 맡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오. 부디 유공이 맡아 다스려주셔야 하오. 그것이 이 늙은이의 마지막 부탁이라오."
유비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초가 어찌 그런 중임을 감당하겠습니까? 능력 밖의 일입니다."
"허허ㆍㆍㆍ 지나친 겸양은 오만이외다. 더구나 이 늙은이가 이토록 간절히 애원하건만 어이하여 자꾸만 사양하는 것이오?"
도겸은 숨이 가쁜 듯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손건(孫乾)이 서주에 관해 모르는 것이 없으니 공의 곁에서 잘 보좌해 줄 것이오. 그리고ㆍㆍㆍㆍㆍㆍ."
도겸은 미축을 돌아보며 더듬더듬 말했다.
"유공은 당대의 영웅이니ㆍㆍㆍ 부디 자네가ㆍㆍㆍ 날 대하듯이ㆍㆍㆍ 잘ㆍㆍㆍ 보필하도록 하게."
유비가 손을 저어 사양하려는데 돌연 도겸의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떨어졌다. 서주무림을 다스리던 당대의 인걸이 한 순간에 허무하게 숨을 거둔 것이다. 유비는 탄식하며 지그시 눈을 감아버렸다.
도겸의 장례식은 서주의 무인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장례가 끝난 후 미축, 진등, 손건 등은 도겸의 뜻을 받들어 유비로 하여금 서주를 다스려달라고 정식으로 청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여전히 고사할 뿐이었다.
"안될 말이외다. 자제분이 계신데 내 어찌 서주를 넘본단 말이오?"
유비는 서둘러 소패로 향했다. 그런데 보문을 나서려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천 명이 넘는 무인들이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유비를 향해 바닥에 엎드려 간청했다.
"서주를 맡아 주십시오! 공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길을 열 수 없소이다!"
유비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미축과 진등, 손건도 무릎 꿇고 간절히 청원했다.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주시오! 유공께서 버리면 서주는 끝이옵니다."
도겸의 두 아들도 눈물을 흘리며 청을 올렸다.
"공께서 끝까지 거절하면 아버님은 영원히 눈을 감지 못하실 것입니다. 부디ㆍㆍㆍ 서주를 맡아주옵소서."
유비는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보루 위에서 한 마리의 수리매가 빙글빙글 선회하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 미련이 남아있어 창천으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형님ㆍㆍㆍㆍㆍㆍ."
관우가 그의 옆구리를 건드리며 뭐라 말하려는 순간 유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보잘 것 없는 불초지만 당분간 서주를 맡아보도록 하겠소이다."
"와아아아ㆍㆍㆍㆍㆍㆍ!"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환호성이 울렸다. 서주의 무인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유비를 둘러싸고 박수를 치며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심지어는 당대의 영웅 유비가 서주의 새 영도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는 자도 있었다.
유비는 소패를 정리하고 서주로 진영을 옮겼다. 비록 수차례에 걸쳐 도겸의 청을 사양하긴 했지만 일단 서주를 맡게 되자 그는 여러 가지 조치들을 신속하게 시행해 나갔다. 그것은 사방의 호웅들로부터 호시탐탐 위협받던 서주무림을 강건하게 키우기 위한 효과적인 조치들이었다.
우선 그는 미축과 진등을 군사(軍師)로 삼고 손건으로 하여금 서주의 살림을 맡게 했으며, 자신을 따르던 무인들과 서주의 무인들을 통합하여 새로운 조직과 직제를 짜고 엄격한 훈령을 내려 기강을 바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무사들의 무예를 단련하기 위해 연무장을 새롭게 정비하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직접 점검에 나서기도 했다.
어느 정도 정비가 끝난 후 삼형제는 한 자리에 모였다.
"젠장! 결국은 이렇게 될 걸, 진작 받아들이지 웬 뜸을 그리 들이셨소?"
조촐한 술상을 가운데 두고 앉자 장비가 퉁명스럽게 쏘아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관우 역시 상기된 표정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들 삼형제는 지난 십여 년 간 제대로 된 영지 하나 없이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했었다. 이제 서주를 얻음으로써 바야흐로 무림의 패주로 첫 발을 내딛게 된 셈이었다.
유비는 술병을 들어 관우, 장비의 순으로 술을 따라주었다.
"그 동안 이 어리석은 형을 믿고 따라준 자네들을 고맙게 생각하네."
유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흥분하거나 조급해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늘 기다리고 인내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위인이었다. 혹자는 그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주를 얻은 것을 두고 거저 얻었다고 말할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누가 그처럼 행동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