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는 복양으로 돌아오자마자 진궁부터 찾았다. 진궁의 계책을 따른 결과 통쾌한 대승을 거둔 터라 그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자네의 계책은 대단했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묘안을 일러주게."
진궁은 지체 없이 지낭(智囊)을 끌러내었다.
"지금 복양에 전가(田哥)란 자가 살고 있습니다. 그 자는 이 곳의 호족으로 수천의 무사들을 거느리던 자입니다. 그 자로 하여금 조조에게 밀서를 보내게 하십시오."
여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은 모두 따르겠네. 한데 뭐라고 쓸 셈인가?"
"여공께서 복양의 무인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바람에 이 곳 분위기가 험해졌습니다. 그래서 공께서 이 곳을 버리고 본진을 여양(黎陽)으로 옮겼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아울러 복양은 고순 등 소수만이 지키고 있으니 조조가 야음을 타 공격하면 전가가 안에서 내응하겠노라고 쓰게 하는 겁니다."
여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다고 놈이 믿을까?"
진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조조는 자신의 머리를 과신하는 자라 스스로의 꾀에 넘어갈 것입니다. 그를 보중으로 끌어들인 후 보문에 불을 지르고 안과 밖에서 매복시킨 무사들이 동시에 공격하면 설사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한들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여포는 껄껄 웃었다.
"과연 대단한 계교일세!"
여포는 즉시 전가를 불러 명을 내렸다. 전가는 가족이 모두 잡혀있는 처지라 그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전가가 보낸 수하는 은밀히 보를 빠져나가 조조에게 밀서를 전했다. 조조는 밀서를 서너 번 면밀히 읽어본 후 크게 기뻐했다.
"하늘이 날 돕는구나!"
그는 전가의 수하를 치하하고 돌려보낸 후 복양을 공격할 준비에 들어갔다. 평소 지략에 밝은 그가 이토록 쉽게 결정을 내린 것은 실로 교묘한 일이었다. 그는 밀서의 내용이 그를 끌어들이려는 계략이라면 정말로 단수가 높다고 생각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여포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포의 단순한 머리로는 그 같은 고단수의 계략이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군사 유엽이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주공께서는 신중하여야 합니다. 여포는 우매한 위인이지만 그의 곁에는 진궁이 있지 않습니까?"
조조는 빙긋이 웃었다.
"내 어찌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 예감이 맞을 것이오. 여포는 승리에 도취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위인이오. 진궁이 있다 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오."
유엽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도 주공의 안전이 제일입니다. 주공께서 정히 가시겠다면 무사들을 삼대(三隊)로 나누어 두 대는 밖에 두고 한 대만 복양으로 진입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그대의 말대로 하리다."
조조는 무사들을 세 대열로 나누어 복양으로 쳐들어갔다. 그는 보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그가 살펴보는 것은 보루에 꽂혀있는 형형색색의 깃발들이었다. 전가가 보낸 밀서에 의(義)자를 쓴 백기(白旗)를 꽂아둘 테니 그것을 신호로 공격하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그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과연 보루 위에 의자가 새겨져 있는 백기가 펄럭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선발대로 하여금 공격준비를 하게 했다. 오시(午時)가 되자 보문이 열리며 무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전군과 후군으로 대오를 짰는데 전군의 수뇌는 후성이요, 후군은 고순이 맡고 있었다.
"전위는 나가 놈들을 쳐라!"
조조의 명이 떨어지자 전위는 우렁차게 외치며 수하들을 몰고 달려 나갔다. 양측이 맞붙어 싸우기를 얼마 안 되어 후성은 뒤로 후퇴했다. 후성이 보 안으로 달아나버리자 고순이 대신 나서서 전위를 맞아 싸웠다. 한데 몇 합을 나누어보더니 그도 전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달아나 보 안으로 숨어 버렸다. 열렸던 보문도 이내 굳게 닫혀버렸다.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린 싸움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은밀히 조조를 찾아온 자가 있었다. 그 자는 자신이 전가의 수하라고 밝히며 밀서 한 통을 내밀었다. 조조는 밀서를 뜯어 보았다.
<초경(初更)에 징소리가 보중에서 들리면 즉시 공격하십시오. 때맞춰 보문을 열어 두겠습니다.>
조조는 회심의 미소를 지은 후 수하들을 불러 명을 내렸다.
"하후돈과 조홍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고 하후연, 이전, 악진, 전위는 날 따르라. 내가 직접 복양의 보를 접수할 것이다."
이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들이 보문을 뚫고 들어가겠습니다. 주공께서는 밖에 계십시오."
조조는 정색을 하며 꾸짖었다.
"내가 몸소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앞장선단 말이냐?"
초경이 되었다. 조조의 무리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는데 과연 복양의 보중으로부터 징소리가 울렸다. 조조는 수하들과 함께 보를 향해 진격했다. 그러자 보중에서 요란한 함성이 일어나더니 보문이 활짝 열렸다.
"핫핫핫핫······! 문이 열렸다. 복양을 쓸어버리자!"
조조는 대소를 터뜨리며 앞장서서 보문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데 괴이한 일이었다. 그가 채찍을 휘두르며 문을 통과해 한참을 달렸지만 적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보는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아차! 계략에 빠졌구나!"
그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막 말을 돌리려는데 함성이 울리며 여기저기서 수많은 무리들이 뛰쳐나왔다. 어디 그 뿐이랴! 사방의 문에서 화광이 충천하며 징소리, 괭가리 소리가 고막을 치는 가운데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