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돌아보니 얼마 전 수하로 들어온 전위란 사나이였다. 전위는 쌍철극을 바닥에 꽂더니 옆구리에서 십여 개의 단극(短戟)을 꺼내 양손에 움켜쥐고 옆에 있는 무사에게 말했다.
"적이 열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면 말해다오."
전위는 가슴을 쭉 편 채 조조를 가로막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것을 본 여포의 수하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를 향해 말을 몰아 달려갔다. 말을 탄 자들과 걸어가는 전위의 거리는 급격히 좁혀졌다. 이내 몇 기가 그의 코앞으로 달려들었다.
"열 발자국 안입니다!"
뒤따르던 전위의 수하가 소리쳤다. 전위는 돌아보지도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다섯 발자국 안으로 오면 말해다오."
전위는 양손에 거머쥔 단극으로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면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 광경을 본 조조는 감명을 받고 내심 중얼거렸다.
"아아! 내가 복이 있어 저런 용맹한 수하를 두었구나."
"다섯 발자국 안입니다!"
수하의 다급한 외침이 들리는 순간 전위의 손이 번뜩 움직였다. 그는 정확히 조준하여 앞장 서 달려오는 마상의 적을 향해 단극을 날렸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서너 명의 적이 목을 움켜쥐고 말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뒤따라 달려오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위가 서있는 곳으로부터 다섯 발자국 안쪽으로 접근하는 순간 차례로 단극을 맞고 황천으로 갔다. 전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그가 단극을 하나씩 던질 때마다 정확히 한 명씩 목이 꿰뚫린 시체가 되어 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여포의 수하들은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비록 그들의 수효는 월등히 많았지만 눈앞에서 한 명씩 죽는 것을 보고는 심장이 오그려 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더 이상 달려오는 자가 없자 전위는 바닥에 꽂아 두었던 쌍철극을 뽑아들고 마상으로 뛰어 올랐다.
"비켜라! 앞을 막는 놈은 지옥으로 보내주마!"
그가 쌍철극을 휘두르며 달려가자 학맹을 비롯한 여포의 수하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전위는 장소를 터뜨리며 적진으로 뛰어들어 살수를 펼쳤다. 양손에 나누어 진 쌍철극이 가공할 경기를 뿌릴 때마다 비명과 함께 피보라가 난무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을 죽이자 여포의 수하들은 겁을 집어먹은 채 사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조는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는 전위가 만든 도주로를 통해 달려갔다. 그러자 여기저기로 흩어졌던 수하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대오를 형성하게 되었다. 조조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지(死地)를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새 여포가 바짝 쫓아온 것이 아닌가.
"네 이놈 조조야! 쥐새끼처럼 어디로 달아나는 거냐?"
여포의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그의 뒤통수를 쳤다. 조조는 내심 비명을 질렀다.
"오늘 밤 이 조조가 죽고 말겠구나!"
돌아보니 전위는 물론 수하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여포의 손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상대하지 말고 모두들 전력을 다해 달아나라!"
그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수하들은 더 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달아나기에 바쁠 뿐이었다. 뒤에 처져 있던 자들이 가장 불행했다. 여포의 공격을 받고 내지르는 그들의 비명소리에 조조의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비명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여포의 천극도에 조조의 목이 떨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조조는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아아! 하늘이 이 조조를 버린단 말인가?"
그 때였다. 남쪽으로부터 한 떼의 인마가 달려왔다. 그들은 하후돈이 이끄는 본진의 무사들로 그를 구하러 달려온 것이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것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하후돈은 조조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무사들을 돌아보며 외쳐 물었다.
"너희들은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움으로써 명예를 지키겠느냐? 아니면 비겁하게 죽겠느냐?"
무사들은 조조의 옷이 찢기고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이내 병기를 휘두르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명예롭게 싸우다 죽겠습니다!"
하후돈은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그럼 날 따르라!"
"와아아아!"
하후돈과 그의 수하들은 함성을 지르며 여포를 향해 달려갔다. 본래 죽으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 법이다. 하후돈과 그의 수하들이 죽음을 도외시한 채 달려들자 천하제일의 무예를 자랑하는 여포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도 밤을 새워 싸운 터라 체력이 소진될 만큼 소진된 상태였다. 그는 하후돈과 몇 명의 고수들과 어울려 싸움을 벌였으나 쉽게 이길 수가 없었다.
번쩍!
돌연 암천으로부터 섬광(閃光)이 일어났다. 뒤이어 고막을 두드리는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칠흑 같은 밤에 폭우가 쏟아져 내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싸움은 멈춰지고 말았다. 양측은 전신이 흠뻑 젖은 채 병기를 거두고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조조는 간신히 목숨을 건져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전위를 크게 치하하고 그를 자신의 호법(護法) 무사로 삼았다.
"자네는 앞으로 절대 내 곁을 떠나지 말게."
전위는 격동을 금치 못하며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속하, 주공을 그림자처럼 따르겠소이다!"
조조는 태사의에 주저앉으며 눈을 감았다. 지난밤의 일들이 마치 십년 동안에 일어난 일인 듯 길고 파란만장하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