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마! 하면 우선 유명한 경주마가 떠오르기 전에 유명한 기수가 떠오른다. 한국 경마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온 것은 여러분의 노고의 대가로 이뤄졌겠다. 경마의 근간인 경주마를 생산하는 생산 목장과 종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음은 태어난 경주마를 경마장에서 뛸 수 있도록 가격을 불문하고 소유해주는 마주는 몫 또한 크다. 경마장으로 데려온 경주마를 먹이고 훈련하여 경주를 달리게 하는 역할은 조교사가 총괄하고 있는 마방과 종사자다. 훈련된 경주마가 능력 검사를 통과한 후 경주에 출전하려면 운전자인 기수가 경주마 고삐를 잡는데 경주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기수 역시 큰 몫을 했다.
한국 경마를 가장 건강하게 이끌어 온 국민 기수 박태종은 경마를 모르는 모든 국민에게도 회자할 만큼에 그에게는 공로가 있다. 한국 경마의 모든 새로운 역사를 써온 그가 쌓은 금자탑은 문세영 기수가 더 오래 경주로에 남아있을 수 있을 때 새롭게 정리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의 길을 오롯이 문세영 기수가 따르지는 않을 것 같아 금자탑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다. 경주마는 명마로 등극하더라도 경주로를 떠나면 팬들에게 서서히 잊힌다. 다만 종모마로 쓰여 자손을 퍼트리면 오래오래 팬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경주마와 기수의 영광의 배후에는 조교사가 있다. 한국 경마에 잊힐 수 없는 조교사도 여러 명을 거론할 수 있겠다. 조교사로 평생을 살다가 정년이 돼 퇴임하면서 소속 마방의 경주마로 1000승 이상 우승 탑을 쌓은 분은 고작 두 분밖에 없다. 기수 양성학교 교관 출신인 신우철 조교사와 관리사 출신의 박대흥 조교사다. 물론 우승 수에서는 밀리지만 명마 ’대견‘을 발굴한 최혜식 조교사나, ’동반의강자‘를 성공시킨 김양선 조교사 등등 많은 정년을 별 사고 없이 퇴임한 조교사들이 한국 경마의 발전에 디딤돌 역할을 했던 것 만은 사실이다.
지난 25일 부산경마장 19조 마방의 책임자로 활약을 하고 퇴임식을 마친 김영관 조교사! 그는 2001년 ’루나‘라는 왜소하고 다리를 저는 망아지를 명마로 만들어 내며 부산 경마의 실질적인 리더로 활약했다. 서울경마장 은퇴한 이혁 기수의 부친인 이희영 조교사와 같은 해 제4기 기수학교 출신 기수로 출발했으나 체중 조절의 어려움 때문으로 관리사로 직업을 전환한다. 100년의 역사를 쓴 서울 경마보다 80년이나 뒤늦게 출발한 부산경마장 원년 조교사로 다시 시작한 그는 부산경마장의 경주마를 서울경마장의 경주마와 대등한 격조로 끌어 올리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그 공로를 마사회에 인정을 받아 2년 전 정년 퇴임이었으나 2년을 연장받게 되었다. 지난 25일 연장이 끝나면서 서울경마장 유재길, 안해양 조교사와 같이 경마장을 떠난다.
신우철, 박대흥 조교사가 올린 1000승 이상의 우승을 훨씬 뛰어넘는 1539승!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따라올 수 없는 위대한 승수겠다.
그는 경주마를 바라보는 안목부터 탁월했다. 매번 경매시장에 나올 때마다 외면받았던 제주도 조그만 민간목장에서 왼쪽 다리를 저는 장애의 망아지 ‘루나’를 구매했다. 역대 최저가인 970만 원에! 어렵게 낙찰된 말을 세심하고 알뜰하게 보살피고 훈련 시켜 은퇴할 때까지 33경기에서 13승, 자기 몸값의 78배에 해당하는 총상금 7억5700만 원을 기록한 명마로 우뚝 서게 만들었다. ‘루나’는 2011년 차태현 배우가 주연으로 분한 영화 ‘챔프’의 경주마 ‘우박이’의 실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올드팬들이면 누구나 ‘루나’를 기억하면서 한국 경마와 부산경마장은 한 격조 높게 성장했다.
단순 비교가 어려웠으나 서울, 부산 오픈 대상경주가 만들어지면서 확연하게 두 경마장의 최초의 격차는 점차로 좁아지다가 대등해지면서 부산경마장은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 19조 경마장이 부산 최고의 마방으로 빛나면서 드디어 서울, 부산 통틀어 최고의 마방이 되면서 마주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부산의 19조에 경주마 위탁을 꿈꾸게 했으니 일약 최고의 마방으로 불리 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쏴 올린 대상경주 우승은 71개에 달한다. 박태종 기수가 쏴 올린 2246승이 언젠가는 깨지겠지만, 김영관 조교사가 올린 71개의 대상경주 우승은 아마도 한국 경마에서는 다시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마의 내 노라는 명마의 탄생이 그이 손을 거쳐야 가능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2007년 ‘제이에스홀드’가 삼관마로 탄생한 지 9년 만인 2016년 드디어 ‘파워블레이드’란 명마를 발굴해 삼관에 등극시킨 것이다. 삼관경주가 생긴 지 11년 만에 두 번째 삼관마를 탄생시킨 그는 그야말로 경마인(홀스맨)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한국 경마에 업적이 컸다.
17연승을 내달린 대기록의 ‘미스터파크’란 명마는 한국 경마의 위상을 끌어 올렸다. 수없이 많은 명마가 19조 마방에서 쏟아져 나온 것이 잠깐 지나가는 행운만으로 일궈진 것은 아니란 것을 입증한 것은 재임 시 매년 수없이 많은 명마를 발굴했고, 탄생시켰다. 대통령배 대상경주를 4연패한 ‘트리플나인’과 ‘즐거운여정’등등 한국 경마의 명마들은 그의 손으로 발굴되었고, 그가 키워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지난 25일 은퇴식을 마치고 한국 경마를 떠나면서 그는 “한국 경마는, 특히 한국마사회는 나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준 곳이다. 한국마사회 소속으로 기수부터 조교사까지 정말 인생에 변수 없이 정상까지 왔다. 처음엔 ‘최고가 되자’라는 목표로 이곳에 왔는데, 이제는 남들이 많이 부러워하는 경마인이 됐다. 내게 기회를 준 마사회, 부산경마장에 감사하다”라고 술회했다.
김영관 조교사의 퇴임을 축하하며 그의 앞날에 한국 경마에서처럼 행운이 이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유재길, 안해양,양귀선 조교사의 퇴임에도 박수를 보내며 건투를 빈다.